창업은 단지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일(事)과 업(業)은 다르다. 어떤 지위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자아를 실현하는 길(道)이고, 잘 사는 방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의 산업문명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일 중심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거기에 익숙해져 있다.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99%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겠다”고 적는다. 의사, 판검사, 교수, 경영자, 연예인 등등 ‘직업’을 자신의 꿈이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되겠다(being)는 것보다는 어떤 일을 하겠다(doing)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크게 두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교육 때문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산업의 역군을 키워내는 교육이 필요했다. 그러나 산업문명이 쇠락하는 현 시점에서 일꾼을 대량생산해내는 기계식 교육으로는 자신만의 업을 발견할 수도 발현시킬 수도 없다. 내가 누군지,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레밍 떼에 합류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는 형국이다.
두 번째 이유는 여러 가지 직업군 중에서 가장 마음에 끌리고 모양 나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보고 나의 업을 발견하는 것보다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우화는 인간이 자신의 실존과 대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해준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집 앞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무엇을 그리도 찾고 있소?”라고 물었다.
“예,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찾을 수가 없네요.”라고 대답했다.
“어디서 잃어버리셨는데요?”
“예, 방 안에서요.”
“아니, 집 안에서 잃어버린 것을 왜 집밖에서 찾고 있으세요?”
“방 안은 너무 어두워서요.”
방 안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안은 어두워서 못 찾겠다고 밖에서 찾고 있는 이 우화의 주인공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은 우스꽝스러운 이 모습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어쩌면 우리는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변명과 자기합리화, 그리고 거짓된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게 되는 것은 마음 안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외부에서 찾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불편해한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두려워한다. ‘나’의 실존과 대면하는 철학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업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막연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직업군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직업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사라지는 상황에다 대고 어떤 직업을 갖겠다고 얘기하는 모습은 어처구니없는 넌센스 아닌가?
자신의 잃어버린 실존을 진지하게 찾아보지 않는다면 창업을 할 수 없다. 자신의 업을 모르는데 어떻게 업을 세울 수 있겠는가? 사업자등록을 내고 돈벌이를 시작하더라도 그건 창업이 아니다.
창업이란 ‘회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업은 돈벌이와 상관없을 수도 있다. 봉사를 자신의 업이라 생각하고 구호단체에서 일하며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또 공무원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기업 조직에서 월급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의사나 교사도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업이라는 진정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안정된 수입, 사회적 인정과 출세 욕구, 이러한 세속적 가치관이 저변에 깔려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업이라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철밥통 속에서 안주하다가 바깥세상 철의 변화를 모르는 철부지(不知)가 된다. 그러다 40-50대 나이에 들어 퇴직하면 나머지 40-50년의 삶을 무기력하게 살아야 한다.
반면 일이 아니라 자신의 업을 하는 사람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I am a business”, “I am a brand”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다. 월급쟁이처럼 일하지 않고 창업가처럼 일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업을 찾고 세우는 창업이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 그 사람이 아무리 지위가 높고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 오래가지 못하고, 또 사람들이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길거리를 쓸고 있는 환경미화원이나 폐지 줍는 노인처럼 사회적 지위가 미천하고 별 볼 일없어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업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감동과 존경심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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