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지속적이고 은밀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인간이 사회 공동체 안에 존재할 때 의미를 지니고 가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삶을 살펴보면 이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회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한 개념 정의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이 사회 공동체에서 자신의 삶을 지켜내려면 지속성(持續性)과 은밀성(隱密性)이라는 삶의 속성을 이해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2010년 8월 칠레 북부 산호세 광산에 33인의 광부가 매몰되었다가 69일 만에 구조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존이 확인된 순간부터 생환까지의 구조 과정은 가족들뿐만 아니라 칠레 국민들과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졸이게 하며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구조 과정은 실제로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기적의 구조 드라마는 많은 뒷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강인한 정신과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여 빈부격차로 분열되었던 칠레를 하나로 만든 영웅들입니다. 그러나 매몰 사고가 난 순간부터 구조의 손길이 닿기 전까지 지하에 갇혀있던 그들의 상황은 우리가 알고 있던 내용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절망감으로 고함을 지르고 밀폐된 좁은 공간 속에서 누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 다투었습니다. 그리고 소속이 달랐던 몇몇 광부들은 자신들만 탈출하려고 독자적으로 행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생존과 구조 가능성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삶의 지속성과 은밀성이 사라진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적나라한 모습을 서로에게서 보았습니다. 그 모습은 나중에 구조의 손길을 발견하고 구조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때 자신들이 보였던 부끄러운 모습들을 외부에 이야기하지 말자는 약속까지 할 만큼 그들 자신에게도 불편한 것이었습니다.

칠레 광부의 구조 사건은 인간의 능력과 가능성에 자부심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지속성과 은밀성이 사라진 인간의 삶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합니다. 만약 그들이 구조되지 못하고 그대로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더라면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요? 그리고 구조된 후 칠레 광부들의 개인적인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삶이 지속성과 은밀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구조된 이후 칠레 광부들의 인생 경로를 예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영웅이 되고 공인이 된 칠레 광부들 중 삶의 지속성과 은밀성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갑자기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어 세상에 알려진 사람이 겪는 것과 비슷한 인생 경험을 하며 지낼 것입니다. 특정한 시기와 상황에 발생했던 사건, 즉 지속성과 은밀성이 사라진 사건에 함몰되어 인생이 그 사건의 영향 아래 놓이는 걸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끝까지 살아낼 수 없습니다. 인생에서 드라마 같은 극적인 상황은 지속되지 않습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영화 주인공도 실제로 그 삶을 계속 이어간다면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다시 찍어야 합니다.

칠레 광부의 이야기처럼 사람이 살면서 겪는 다양한 형태의 경험과 기억이 삶을 지배합니다. 그런데 그 기억과 경험이 지속성과 은밀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그것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지속성과 은밀성이라는 삶의 속성을 이해하면 인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인 관계에서 은밀성은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관계는 은밀성을 필요로 합니다. 자신과의 관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를 비롯한 모든 관계에서 은밀함이 유지될 때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은밀성이 없다면 그 관계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사회 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사회 공동체와 분리된 은밀성을 필요로 합니다. 사회 공동체와 분리된 은밀함에서 휴식을 얻고 회복을 얻습니다. 그래야 삶이든 관계든 지속할 수 있습니다. ©sam